의사와 환자 모두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사와 환자 모두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가 봐도 정말 멋있던 잘 나가는 사업가를 입원 병실에서 보았다.
아프고 나서 몰골이 말이 아니게 변한 것도 있었지만 사실 가장 처량하게 보였던 것은 입고 있던 환자복 때문이었다. 늘 말끔한 슈트 차림이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로고와 명칭이 세로글씨로 줄잡아 열댓 개는 쓰여 있는 촌스러운 옷으로, 말 그대로 환자복이 그 사람을 환자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주위를 돌아보니 입원실의 환자들 모두 다 비슷해 보였다. 외래에서는 나름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던 환자도 환자복을 입은 입원실에서는 감히 소리를 지르기 어렵다.
수십 년간 치과에서 환자를 진료해본 의사라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파노라마 방사선 사진만 보면 그 환자의 과거가 보인다는 것 말이다.
환자의 얼굴보다 파노라마 사진을 봐야 그 사람이 더 잘 기억난다. 물론 정확하지 않은 예도 있지만 현 치아 상태는 분명 그 사람의 지난 과거의 성장 과정,
생활습관, 경제력, 전신 건강, 건강지수, 등을 대략 말해 준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 선택한 것들의 결과물이다.”란 말은 이 상황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질병 상태에 있는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는, 자신이 선택한 여러 가지 습관들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습관에서부터 수면습관, 음주습관, 흡연습관, 반복되는 스트레스 등의 생활습관이 지금의 건강 상태를 만들었고 그것을 조절하지 않는
이상 나빠진 상태를 회복시키기란 쉽지 않다. 바꾸기 어려운 이유는 이미 그 상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환자들에게 칫솔질을 가르쳐 주고, 치실과 치간 칫솔 사용법을 늘 알려주지만 정말 맘에 들게 제대로 하는 환자는 드물다.
생각해 보라. 칫솔질은 세 살 때부터 하던 거 아닌가. 나이 든 성인한테 젓가락질 가르쳐 주는 거랑 비슷한 거다.
젓가락질은 잘 못 해도 밥은 잘 먹을 수 있지만 칫솔질을 못 하면 이는 썩고 잇몸은 망가진다.
그렇지만 알면서도 잘 못 고치는 것은 그만큼 익숙해져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늘 목덜미가 아파서 병원을 자주 찾는다. 하지만 내 습관이 바뀌지 않는 이상 반복될 것이다.
병원에서는 늘 자세를 바로 하고 스트레칭을 해주고 한 자세로 너무 오래 있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치과 체어에서 바른 자세로 진료하기란 익숙하지 않고 틈날 때마다 스트레칭하고 자세를 자주 바꿔가면서 진료하는 것도 나만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쉽지가 않다.
그 병원에서 나라는 환자는 내가 늘 잔소리하는 칫솔질 못 하는 환자 같은 존재일 것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익숙함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직장과 집이 대표적이다. 질병을 유발한 환경 자체에 변화를 줘야 한다.
심한 경우에 장기 입원을 하고 요양을 해야 하는 이유는 케어를 필요로 하는 것 말고도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분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직장과 집을 떠날 수 없다면 그 장소에 어떤 변화를 줘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라
익숙함은 사람을 무디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 현재 익숙해져 있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지금 겪고 있는 질병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입안에 생기는 만성질환도 익숙해지면 통증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저절로 이가 빠질 정도인데도 환자는 그때까지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때로는 익숙함에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환자를 종종 본다. 아니 어쩌면 거짓말이 아니라 너무 그 상태에 익숙해서 질병이 자기화(自己化)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고 눈에 보이는 병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봐야 한다고 배운다.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과 사복을 입은 군인은 군기가 다르다. 나이 든 사람도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면 영락없는 군바리(?)가 되고 만다.